뜨개를 꺼내, 다시 들다

이런 추억에 더해, 누구든 초중고등학교를 이곳 대한민국에서 나왔다면 목플러와 스킬자수라 불리던 방석 하나쯤은 떠본 경험이 있을 터이다. 그렇다고 그 이후 무언가를 지속한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무언가 특별한 계기가 생기지 않았다면 다시금 추억 속에 묻어둔 뜨개바늘과 털실을 사러 동대문종합시장을 가는 열정까지 보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그러나 배터리가 방전된 차에 스파크를 일게 할, 그런 소중한 계기는 때때로 찾아 온다. 내가 줘야할 때보다 받을 때 더 커지는 선물이 계기가 되어 찾아 온다.

남자친구에게 선물할 목플러를 급히 제작해야 하거나, 유독 손재주 많아 부러움을 사던 절친한 친구로부터 따뜻한 비니 모자를 선물 받을 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대학간 딸을 위해 어머니가 손수 떠주신 예쁜 구슬 장식의 손가방을 선물 받을 때나, 앞태 뒷태까지 살피며 며늘아기에게 꼭 맞는 옷을 떠주시고 싶으셨던 시어머니로부터 뜨개 원피스 같은 것들 선물로 받는다면 말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누린 사람으로 향후 20여 년이 흐른 지금, 동대문종합시장을 여기저기 누비며 원하는 실은 최적의 가격으로 사는 열정을 지닐 충분한 계기와 자격을 이때 미리 갖춘 셈이다. 내게 스파크가 되어 준 때이다.

그 전에는 비록 넘사벽에 범접할 수 없는 어려운 취미생활이라 여겼지만 누군가에서 받은 소중한 선물을 내가 제작해 보리라는 욕심은 과감히 도전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내 앞의 선험자들은 나에게 친절하게 한 코 한 코, 한 땀 한 땀의 비결을 기꺼이 알려 주었다. 특히 젊은 시절 수예점을 직접 운영하신 시어머니는 언제나 ‘뭐 그게 그리 어렵니? 이리 와봐. 내가 가르쳐 줄게.’ 하고 자신의 지식을 며느리에게 아낌없이 나눠 주셨다. 내가 주는 대로 잘 받아 먹는 학생인지, 막힌 귀에 느린 손을 가진 답답한 학생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귀찮은 기색 없이 시어머니는 알려주시기를 꺼리지 않으셨다. 어렵다면 어려운 관계는 뜨개질이 매개가 되어 서로의 작품에 감탄을 연발하는 사이가 되게 끔도 하였다.

그러고 보면 이 당시의 뜨개질 활동을 주변으로 이루어지는 배움과 만남은 주로 수직적이거나 여성을 중심으로 한 관계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어머니가 딸과 며느리에게 알려주면 어깨 너머 배워 하나둘 기술을 익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굉장히 아날로그였고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졌으며 가르쳐주는 대로 배우는 형식이었다. 그래도 온정이 있어 즐거웠다.

멀리 타지 생활을 하게 된 나는 이렇게 시작한 옛스러운 뜨개취미를 배울 곳을 잃은 채 기억 속에 묻어버릴 뻔 했다. 하지만 유투브(Youtube)의 튜토리얼과 래버리(Ravelry)은 되려 모든 것을 확장했다. 관계도 국경도 언어도 분야도 확장했을 뿐 아니라 성별과 나이까지 무너뜨리며 수직적이기만 하던 가르침을 벗어나,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익히는 능동성까지 갖추게 했으니 더없이 용이했다. 도안을 읽는 법도 유투브로 배우게 되었다. 내가 원하면 나는 최고의 전문가까지도 될 수 있을 판이라 오만을 부릴 정도로 그 재미에 푹 빠져 새로운 자극들을 받아 들였다. 비록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나의 몽상임을 짧은 시간 내에 알게 됐지만 말이다. 배움의 바다는 넓디 넓음을 직접 경험해 본 셈이다.

이렇게 국경과 나이는 물론 성별을 넘어 모두가 연결되어있는 다양한 SNS와 취미에서 학습 튜터링까지 특화된 플렛폼이 등장하면서 배움은 더욱 활발해지고 국제적이면서 문화를 뛰어 넘는 교류의 장이 되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원하든 원치 않던 우리는 온라인에서 더욱더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뜨개질과 같은 창작 활동을 통해 좀더 넓은 물에서 놀게 된 나는 오늘도 포스팅할 새로운 작품을 뜨고 있다.

나의 뜨개질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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